잠실운동장을 처음 들락일 때 야구장앞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매혹된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육체를 감상한다는 것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고,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자기 몸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그 때의 몸은 오로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생산적 노동의 두구였다.
연못안에 연꽃이 연분홍색으로 필 때 비춘 내 얼굴은 초라했고, 갈색으로 변한 풀잎사이로 얼굴을 디 밀었다. 뒤뚱거렸다. 뒤뚱이는 모습이 보는이로하여금 어리석음과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 이러한 마라톤을 통해서 비이성적인 것이 이성적(理性的)인 것으로 인전된 셈이다. 힘들이지 않는 것이 현자라면 뒤뚱거릴지언정 힘들고 어리석은 자의 상항이 낫다고 생각했다
매일 달릴 수 없었다. 하루 건너 한 번씩 달리기를 습관화 했다. 등불 아래 사색보다 쏟아지는 일광 아래 8월의 폭염이 9월까지 이어져 한강변 대회를 달렸습니다. 출발할 때는 발에 스프링을 장착하며 탄력받은 용수철처럼 뛰쳐나갔지만 한 낮 기온이 올라 폭염이 어깨죽지를 누룰 때 태양광을 볼록렌즈에 모아 종이를 태우듯 몸과 마음을 더 집중하며 달린다. 폭염이라 해서 필자가 달리지 않을 확률은 수박을 칼로 자를 때 하얀 속살안에서 호박씨가 나올 확률만큼 낮다.
마라톤을 인문학(liberal arts)으로 꼽을 수 있다. 달릴 때 보다 달린 후에 있다. 멈춤의 미학(美學)으로 꼽히는 거미.... 거미줄에 포함된 단백질을 이용해 초강력 세사 생산으로 그물망을 만들어 놓고 모기나 파리 같은 해충을 잡아 먹어 생계에 먹이사슬을 지키는 이로운 곤충이다. 숨죽이고 있다가 그물망에 날파리가 날아들어 그물에 걸려 흔들릴 때 쾌감은 마치 "내가 달리기를 끝내고 멈추었을 때 몸에서 일어나는 오묘한 변화가 있어서이다."
운동 중에 내분비계와 자율신경계의 적응현상이 일어나 일부 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되고 자율신경이 항진 된다. 세포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포막에 수용기들이 활성화된다.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면역계에도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즉 내 몸에 맞으며 중강도 운동으로 과도하지 않으면 운동 후에 인체의 "면역창"이 열려진 상태를 의미하는 이론으로 운동강도에 따른 운동 후 면역반응을 잘 설명하고 있다.
마라톤은 상체의 기를 하체에 빼았긴다. 상 하체가 리드미컬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부상없이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해서 실시해야 합니다. 그러해서 남성의 황금 비율은 어깨와 허리(0.77비율)로 어깨는 넓고 엉덩이는 좁혀 전형적인 "역삼각형"몸매가 이상적인 몸매로 꼽았거든요, 실제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상체가 발달하도록 만든답니다.결국 사람들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몸매로 자손을 퍼뜨리기에 이상적인 몸매였네요. 중년에 자손을 퍼뜨릴 수 없어도 아름다운 용모와 멋진 몸매는 위세(威勢)상품처럼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신분을 규정해 준다. 자신의 몸을 잘 보살펴 노년에도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면 그 어떤 보험이나, 적금, 연금보다 낫고, 유행의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마라톤으로 체험하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몸의 근육,관절 뼈는 안쓰면 퇴화한다.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 근육은 안쓰면 몸 자체적으로 없어진다. 그것이 몸의 생존 본능이다. 몸을 움직여야 마음도 살아 있다. 흔히들 말하기를 마라톤을 우리의 인생과 흡사하다고 비유한다. 마라톤을 통해 반환점을 넘어 만나는 마의 구간이나 마라톤의 벽을 만나 슬기롭게 이겨내는 과정에서 영혼이 육신을 홀대하며 정신력으로 극복하면서 나는 남을 홀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몸에 익힌다. 그러해서 인생과 성공을 통제할 능력이 생기고 믿음이 더욱 커지게 할수 있었다. 나는 마라톤에 끌리고, 삶은 마라톤을 따른다. 인문학은 人사람인 을 써서 사람을 배우고 익히는 학문이라 마라톤을 지팡이삼아 배우고, 삶의 길을 트이게도 합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 ~